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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3일 수요일

작가 블랙판다 신작 소설 - 벼락거지

작가 블랙판다 신작 소설 - 벼락거지

링크 : https://www.bookk.co.kr/book/view/145374 
























도서 정보편집

사회적 이슈인 ‘벼락거지’ 에 대해서 글을 써보았다. 부동산,주식,코인 등 지금의 2030에게 
위로의 글을 쓰고 싶었다.
현실과 마주한 지금 이순간, 나만 지금 벼락거지에 있다는게 아니란걸 알리고 싶었다.
인간은 공유의 마음을 함께 하면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는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너도 그랬구나‘
이 내용을 주고 싶었다.
부자가 되고 싶지도 않았고, 그저 중간만 가기를 원했던 2030 세대에게 혼자가 아니라는걸 
느꼈으면 한다.
저자 또한 긴 인생을 살지는 않았지만 고난의 터널이라는 것은 꼭 끝이 있는걸 보았기에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이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그래도 희극이 있다니 얼마나 위안이 되는가.

2022년 8월 2일 화요일

작가 블랙판다 - 단편소설 '입실중독'

 

작가 블랙판다 - 단편소설집

 

스물셋, 예술에 꽂히다

 

책 구매 - https://www.bookk.co.kr/book/view/106970






입실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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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6일 입대

지금 난 떨리는 눈으로 입대영장을 조목조목 읽고 있었다.

24살로 이미 적지않은 나이가 되어있었지만 군 입대 만큼은 남의 일이길 바래왔다.

10월의 날씨는 왠지 어둡다. 투명한 하늘과 귓불을 스치는 바람도 난 어두워 보인다. 구름이 없고 온통 새파란 바다처럼 하늘이 푸르지만 곧 비가 올것처럼 내 마음은 온통 시커멓다.

입대 영장을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그 종이로 21500원이라는 돈과 바꿀 수 있어 어둡던 내심장은 잠시나마 햇빛이 뚫고 지나갔다.

오후2. 지금은 우체국 안에 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사람이 빼곡이 차 있어 답답함을 느낀다. 보잘것없는 누런 레자 소파에 앉아 VOGUE 잡지를 손에 들었다.

대기표는 308. 지금은 286번을 하고 있으니 대략 1748초를 기다리면 내 차례가 올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 VOGUE 잡지는 대략 91페이지 정도 읽을 것이다.

정확히 19분이 지나자 내 차례가 왔다. 그때 VOGUE 잡지는 298 페이지나 읽었다. 읽었다기 보다는 그냥 훑었다.

21500원을 받았다. 그냥 아무 느낌이 안들었다. 남들은 멋있는 표현을 잘 하던데 난 표현할 게 없었다. 그냥 아무 느낌이 없었다.

핸드폰을 만져봤다. 오늘따라 왜이리 소중하게 느껴지던지. 24년간 살아오면서 부모님과 대화한 시간보다 6개월간 함께 온 나의 핸드폰과의 대화가 더욱 길었다. 그래서 더욱 핸드폰을 만지니 슬퍼진다.

지금 내가 서있는 모습을 찍었다. 표정없이, 그리고 느낌도, 사랑동, 그 무엇 하나도 없듯이 난 찍고 또 찍었다. 핸드폰 용량이 꽉 차서 찍어지지 않아도 난 계속해서 찍었다. 곧 휴대폰은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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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6

아침 8.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떠한 사람의 숨결도 찾을 수 없었다. 식탁에는 어머니의 가식적인 사랑이 담긴 쪽지가 적혀있었고 20만원이 놓여있었다. 오늘 반찬도 역시 김치와 계란후라이, 그리고 밥 뿐이다. 난 이렇게 24년간 단 한번도 바뀌지 않는 불변의 메뉴로 살아왔다. 그래도 난 이 밥을 먹었다.

차디찬 밥과 얼음같은 게란후라이와 전혀 간이 안 밴 김치.

난 전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오전9시가 되어 2호선 성내역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내가 지금 군대에 간다는 사실도 모르고 내 앞좌석 사람은 잠만 자고 있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곱슬머리 아줌마는 촌스런 청자켓에, 80년대 마이클잭슨이 즐겨 입던 기지 바지를 입고 자고 있었다.

난 속으로 나는 지금 군대를 간다고!’를 목에 고름이 나올정도로 외치고 또 외쳤다.

동서울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논산 연무행 버스를 타고 지하철 아줌마처럼 촌스럽게 잠을 잤다. 한달뒤면 25살이고 제대하면 27.

이런 엿같은 생각에 제대로 잠을 이룰수 없었다.

속이 울렁거리려 할 때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택시를 잡아 훈련소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창가로 주위를 둘러보니 부모님과 함께 온 사람, 친구와, 연인과 모두들 함께 온 모양이다. 나는 사실 혼자왔지만 내 앞에 택시기사 아저씨가 함께 있다는 생각에 외롭지는 않았다.

도착 후 택시아저씨는 부모님보다 정감있는 목소리로 건강하라는 말을 남기고 돈을받고 유유히 떠났다.

난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고, 식당에서 갈비탕을 먹고 시계를 보니 1250분이었다. 이제 10분뒤면 군인이 되는 것이다.

 

#

오후 250. 그 많던 인원들은 각자 집에가고 우리들만 남겨두었다.

군복과 내복, 내의와 운동화, 체육복 등 온갖 싸구려 물건들을 우리들에게 뿌려댔다. 조교들의 냉정한 목소리들이 귓가에 울렸다.

단 한 개라도 지급받지 못한게 있으면 알아서 해라!”

알아서 하라는 말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좋지 않은 이야기인 것은 분명하다. 군복과 구두와 모자를 써보니 조금은 군인인 듯 행동에 이 지기 시작했다.

오후 4시부터는 차렷,열중셧만 질리게 했다. 경례도 하고, 다시 차렷,열중셧만 했다. 이제 2년동안 해야한다는 생각에 세상이 까맣게 보였다.

2시간동안 그짓을 하고 조교의 냉정한 목소리로

식사집합!”

이란 구령에 우린 불이나케 모여 밥을 먹었다.

미끌미끌한 철제 밥통에 콩나물 김치볶음, 콩나물 무침, 콩나물 국에 밥을 먹었다. 아마 이틀만 이렇게 먹어도 콩나물 똥을 쌀게 분명하다.

젓가락도 없이 숟가락으로만 밥 먹는게 기분 나빴지만 주위 녀석들은 잘 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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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근무중이다. 불침번이라는 말도 안되는 짓을 하라고 한다. 목에 이상한 판대기로 만든 목걸이로 난, 집을 지키는 개처럼 아무런 움직임없이 있었다. 차라리 개가 되어 실컷 짖고 싶었다.

이곳에 온지 이제 12시간이 지났다. 어제 오후 1시에 도착해 지금 시각은 새벽1시가 되니까 정확히 12시간이 된 것이다.

미칠 것 같은 답답함과 전혀 느끼지 않았을 것 같은 부모님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난 미친놈 같았다. 숨이 가빠왔다. 2년동안, 무려 730일 동안 이렇게 산다는 생각에 내 눈은 돌아가고 장님이 되는 것 같았다. 지옥이 이런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개 목걸이를 차고 새벽1시에 일어나 짖지도 못하는 개가 되어 보고싶지도 않은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미친 개가 되었다. 의자에는 무언가가 뚝뚝 떨어졌다. 바지는 젖어있었다. 팬티도 젖어있었다. 난 그만 미친개처럼 오줌을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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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5

더블백을 싸고 지옥을 탈출했다. 한달이 넘는 이곳의 생활로 내 정신과 육체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눈은 풀린 알콜중독자가 되었고, 코는 아무 냄새도 못 맡는 지독한 충녹증 환자가 되었고, 내 심장은 자유에 쇠사슬을 묶은 심근경색의 환자가 되었다.

난 지옥행 탈출열차를 타고 있다. 내 옆자리는 낯이 익지만 이름도 모르는 녀석이 타고 있었다. 관심없었다. 그녀석 따위는.

열차 창 밖에는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들이 걸어다녔다. 창을 기준으로 밖은 천국, 안은 지옥이었다. 소변을 싸러가면 멀쑥한 정장차림의 녀석이 뒤를 쫓아 다녔다.

열차가 서울 지나고 있다.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며 손을 흔든다. 우린 열차안의 동물이 되어 그들의 인사에 무엇인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의무가 든다. 사람들이 우릴 향해 과자와 초코파이를 던지면 우린 미친 듯이 경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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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9. 지금 난 이등병이 되어 고참들의 신고식을 기다리고 있다. 누구나 알 정도로 식상한 방법을 여기에서 또 한 번 겪었다. 병장이 이등병 옷을 입고 나한테 존댓말로 말을 했다. 하지만 난 그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이렇게 신고식은 싱겁게 끝났고 이미지 게임만을 남겨두었다.

고참들은 나보다 보통 두 살에서 세 살이 적었다. 하지만 그녀석들은 나보러 예의가 없다는 둥, 싸가지가 없다는 둥 말도 안되는 말을 하고 있었다.

어떤 고참이 이중에서 누가 제일 더러울 것 같냐는 질문을 해서 난 없다고 대답했다. 또 다른 고참이 이중에서 제일 짠돌이 일 것 같냐는 질문에 난 또한번 없다고 대답하자 이미지게임은 그것을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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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대에 온지 두달이 지나도 보직이 없었다. 그저 청소하고 밥만 먹는게 나의 업무였다.

320일이 되었다. 그 날은 정말 봄내음이 만연한 오후였다. 이제 막 녹색풀들이 자라기 시작했고 햋빛은 내 얼굴을 사정없이 내려 쬐었다.

난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다 돌 뿌리를 잘 못 건드려 눈에 돌맹이가 부딪히는 사고가 일어났다. 급히 근처 군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입실을 시작해서, 새로운 군생활이 시작되었다.

나의 병명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안구착심증이란 이름으로 난 입실을 했다. 나를 갈구는 고참도 없고 하루종일 청소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지옥같던 군 생활에 자그마한 즐거움을 느꼈다.

2주동안 난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잠만 잤다. 어떤날은 아침만 먹은채 20시간 정도를 잠만 잤다. 꿈도 없이 잠만자니 2주일은 너무도 허무하고 빠르게 지나갔다. 다시 내무실로 가야한다는 생각이드니, 다시 입대하던 우울한 느낌이 떠올랐다.

며칠간은 선임들이 나를 가만 두었다. 사실 나를 피하고 있었다. 얘기도 안하고 나를 왕따시키던 분위기였다. 하지만 오히려 얼마나 감사하던지 난 기뻐서 울고싶었다. 그러나 그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선임들의 갈굼은 오히려 심해졌고 청소의 업무는 더욱 가중되었다. 지금의 가장 최선의 방법은 입실 뿐이었다.

곡괭이 작업이 생기면 꼭 참가하여 돌이 많은 곳을 골라 사정없이 휘둘렀지만 이전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할수없이 난 돌을 들고 내눈을 사정없이 쳤다. 실명이 될 정도로 쳤다면 난 정말 미친놈이겠지만, 약간 눈이 시뻘겋게 충혈 될 정도로만 작품을 만들어 군의관께 제출했다. 결과는 일주일 입실.

난 또 이렇게 일주일동안 잠만 자며 행복하게 시간을 보냈고, 45일간의 100일 휴가도 집에서 잠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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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생활을 한지도 6개월이 되었다. 군생활의 절반은 입실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점점 선임과 동기, 그리고 후임들마저 나를 벌레 보는 듯 쳐다본다. 하지만 난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그렇게 잔인하게 쳐다볼수록 난 더욱 입실중독에 더욱 빠져들고 있었다.

주말이 되었던 토요일 오후. 난 일일취사병 체험이란 프로그램에 뽑혀 취사장에 올라가 온갖 요리를 하는 체험을 했다. 칼로 야채를 썰고, 육개장을 만들고, 온갖 요리를 체험하였지만, 나의 눈과 귀와 모든 세포는 어떻게, 무엇으로, 언제 입실을 할것인지, 더듬이가 사방팔방을 훑고 있었다. 만약 칼로 야채를 썰다 손을 벤다면 입실이 아니라 그냥 치료만 받을거란 가상 시뮬레이션이 작동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성되었다.

30분뒤에는 치킨을 튀긴다고 하였다. 난 기름을 뒤집어 쓸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180도 고온의 식용류를 붓고 치킨요리가 시작되었다. 기름튀기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고, 난 취사병 뒤에서 보조를 하면서 기회를 노렸다. 20분뒤 취사병은 잠깐 소변보러 간다는 말을 하고 사라졌다. 나의 심장은 엄청난 심박수에 터질 듯 했다.

난 손목까지 기름에 손을 집어넣고 얼른 뺏다.

으아!!!”

미칠 것 같은 고통에 난 자세심을 잃었다. 죽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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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던 입실을 했다. 내가 생각해도 집요할 정도였다. 군의관과 면담이 10분뒤에 있다.

왜 사고가 난거지?”

기름통에 집게가 빠져서 빼내려다가 그만 사고가 났습니다.”

조금 심각한 얘기인데, 수술이 잘못되면 한 쪽 손을 못쓸수 있네. 마음의 준비를 하는게 좋을것이야.”

군의관과의 면담 중에 난 슬퍼보이는 표정으로 일관했다. 그러면 군의관이 입실 기간을 늘려줄 것 같아서이다.

2주뒤의 수술은 성공리에 마쳐서 다행이었다. 입실 때문에 한 쪽 팔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수술로 인해서 약 한달간 꿈같은 입실을 했다. 역시 시체처럼 잠만 잤다. 씻지도 않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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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병이 지나고 상병이 되자 누구도 나의 입실생활에 관여하지 않았다. 여타 다른 간부들도 포기한 눈치였다. 난 그렇게 존재감없는 녀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상병이 된 후 난 원인모를 두통에 시달렸다. 뒷골이 땡기고 머리가 터질듯한 고통이 느껴졌고, 난 나의 처방식대로 입실했다.

그저 머리가 아플땐 두통약을 먹었고 더 이상의 치료는 필요없었다. 그저 입실을 통해 잠만 잘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치료책은 없었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지 두달이 지날즈음 무려 살이 15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입실로 인해서 운동부족과 불규칙한 식생활로 인한 것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많이 몸무게가 줄어들었다. 70킬로그램인 내가 55까지 빠지면서 전투복과 체육복이 너무도 헐렁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조금씩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을때마다 보통 200~300 가닥씩 꾸준히 빠지더니, 이제는 남들이 알아볼 정도로 심각해졌다. 그래서 입실은 더욱 오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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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난 입실하는 중이다. 그리 놀라울 것도 없다. 그런데 이제는 입실이 아니라 입원이라 하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난 사흘전에 급성 뇌종양으로 전역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집 근처 강남성심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이제는 입원이 너무 싫어진다. 확연히 입실과 입원은 달랐다.

입실을 할땐 잠이 그토록 달았지만, 입원을 하면 잠자는게 고통이다. 그리고 잠도 안온다.

가끔씩 찾아오는 친척분들이 너무도 귀찮았다. 차라리 안오기를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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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내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왜이리 어색하게 느껴지던지. 난 고개를 돌려 부모님과의 눈을 피했다.

3일뒤에 안 사실이지만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다. 너무 독한 약을 먹는탓에 머리털은 하나도 안남았고, 털이란 털은 모조리 불태워진 듯 사라졌다. 가끔씩 맞는 주사는 감기주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어떨땐 뼈에다 놔 줄때도 있는데, 기름에 손목을 넣었을 때보다 더욱 고통스럽다.

요즘엔 하루에 3시간 이상 잔적이 없다. 이제 눈도 제대로 감겨지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다. 가끔씩 이상한 생각도 드는데 다시 군부대에 들어가, 그렇게 지겨워하던 청소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눈물이 요즘따라 많이 나온다. 그렇게 우울하고 차갑던 내가 죽음앞에서 변화를 느끼나 보다.

입실에 목말라 보험사기꾼처럼 입실 사기꾼이 되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왜이리 웃기던지. 참 좋은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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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부모님이 내 손을 자고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난 부모님과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나또한 눈물을 흘렸다.

신호가 온다. 내가 죽을 것을. 머리가 미친 듯이 아파오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부모님 손을 꽉 잡고 싶은데 손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병원에 입원해서 그렇게 잠도 안오던 내가 지금 잠에 들것 같다. 왜이리 졸린지.

부모님께 모차르트의 휘가로의 결혼을 틀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잠에 들었다. 너무 행복했다. 꿈같은 잠을 잤다. 그리고 다시 깨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잠을 실컷 자게 되었다니. 너무 행복했다.

 

작가 블랙판다 - 단편소설 '세상의 저끝'

 

작가 블랙판다 - 단편소설집

스물셋, 예술에 꽂히다


책 구매 -  https://www.bookk.co.kr/book/view/106970






세상의 저끝

 

 

 

1.

역시 상혁이는 연기를 잘한다니까.”

고 감독님은 내 연기를 모니터링을 하면서, 나의 기분을 맞추려고 하는지, 아니면 정말 나의 연기가 일품이었는지 몰라도 연신, 나를 칭찬해 주었다.

고 감독님 옆에서서, 나의 연기를 지켜보았다. 머리는 45도로 젖혀있고, 눈과 왼쪽 입꼬리는 붙어 자꾸 식용개처럼 질질 흘렸다. 몸을 주체하지 못해 진동을 느끼듯이 좌우로 흔들었다. 내가 봐도 정말 중증 뇌성마비였다.

 

2.

초록 프로덕션에 내 품삯을 줬다. 워낙 조그만 회사라 자체 봉투도 없어 월급을 교회 감사헌금 봉투에 넣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7만원’. 일주일 동안 열연한 결과가 7만원이었다. 하지만 한달 전보다 13천원을 더 주었기에 그리 불만은 없었다. 나는 불만이 없었지만 부모님은 불만이 많으셨다. 당장 때려치우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내 마음도 살짝 흔들렸지만, 역시 그 일은 내 천직이라 생각했다.

부모님이 일본여행을 하시다 사온 사쿠라 바디샴프로 샤워를 했다. 물 온도는 내 체온과 비슷해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TV를 켜고 하이네킨 맥주를 마셨다. 맥주광인 나는 하이트 맥주나 오비맥주 보다는, 내겐 수입맥주가 내 입맛에 맞았다. 한 모금 삼킬 때, 목젖에 느끼는 감촉이 국산 맥주에선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캔 맥주 6개를 까서 마시니 조금씩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3개를 더 까서 마시니 내 자신이 취했구나 할 정도로 몸을 못가누었다.

두시간 정도 잠깐 잠을 잔 것 같다. 어머니가 내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난 눈을 뜨자 어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방에 들어갔다. 나 또한 엄마가 안방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 후 다시 잠을 잤다.

 

3.

어제의 어머니의 행동은 벌써 2년이나 계속 됐다. 내 행동에 문제가 생긴 것 또한 2년이나 되었다.

2년 전부터 나의 몸엔 이상한 유전자가 꿈틀거렸다. 술에 취할때나 잠을 잘 때, 명상에 잠길 때 난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난 무의식중이라 잘 알수 없었지만, 친구가 핸드폰으로 찍어진 동영상을 본 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아침에 어머니와 식사를 하다 어머니가 내게 뺨을 때린 경유를 물었다.

어제는 말야, 왼손과 오른손을 꽉 진채 니얼굴을 사정없이 치는거야. 마치 자폐아들이 하는 자해행위를...... 난 그냥 10분간 쳐다보았지... 하지만 점점 도가 지나쳐 그만 끝내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싶어 니 뺨을 세게 후려친거야.....

그런데 엄마가 볼땐 니가 정말 뇌성마비가 된 듯한 착각을 하게 될 정도로 똑같았어. 계속 침은 질질 흘리지, 머리는 기울어져 있고, 얼굴도 일그러져 있고.... 상혁아, 그만 그 일좀 그만 두렴.“

 

4.

다음날 오전 10시에 일어난 뒤, 오후 4시에 있는 교통사고로 자살하는 뇌성마비 씬을 준비했다. 그냥 대본을 훑어보고 하이네킨 맥주 한캔을 땄다. 역시 하이네킨 맥주는 목 젖을 간지럽게 감촉을 줬다. 초록 프로덕션에 도착한 뒤, 소파에 앉아 스탭들을 기다렸다.

......... ........ ...........................”

초록 프로덕션 사장 딸인 애심씨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중증 뇌성마비이다). ‘안녕하세요를 무려 29초 동안 하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연기공부를 하고 있었다. 머리가 굽어진 각도나, 그 어눌한 말투, 1분에 질질 흘리는 침의 양, 팔의 굽어진 모습들. 난 그녀에게 - (그녀는 나의 살아있는 연기 스승이었다) - 고마움으로 호의적인 태도로 대해주자 그녀는 나에게 메머드급 관심을 주었다.

 

5.

아마도 그녀가 날 좋아한 뒤로 화장을 하고 다녔던걸로 기억난다. 처음 그녀를 봤던건 2년전 여름이었다. 그녀는 사장 둘째딸로 뇌성마비 장애 2급으로, 타이핑 같은 작업을 했다. 비록 몸이나 말하는건 불편하지만 어느정도의 일거리를 주면 그일이 끝날때까지 일을 마치는 의지와 집념이 강한 여성이었다. 그리고 어느 한 뇌성마비 남성이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했지만, 단호히 거절한 콧대높은 아가씨였다.

그녀의 화장이 점점 진해지기 시작하면서 난 그녀가 날 좋아하는 감정의 깊이처럼, 그녀의 화장 농도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요새 화장 농도가 급격히 진해졌다. 그리고 입지도 않던 치마를 입고 왔다. 뼈밖에 남지 않은 약간 흉직한 다리지만 그녀는 치마를 입으면 나를 유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녀가 내게 줬던 음악 CD는 아마 백여장 가까이 될 정도이다. 언제나 음악을 듣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음악적 수준이 정말 뛰어났다. 그녀는 나에게 항상 에반스 Jazz 음악이 정말 좋다고 같이 음악회에 가자고 했으나 약속 핑계로 번번이 그녀에게 좌절감을 심어줬다. 하지만 사장 딸이라 두둑한 용돈 덕분인지 그녀가 내게 준 선물들을 돈으로 환산하면 거의 소리가 날 정도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가식적인 관심을 준다던가, 마음에도 없는 아름답습니다라는 말은 추호도 하지 않았는데, 그런 모습이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나보다.

 

6.

지금은 한남대교에 서있다. 4월의 포근한 날씨지만, 강한 바람때문인지 겨울과 다를 바 없었다. 사실 원래는 한남대교를 걷다 마주오는 차에 몸을날려 자살하는 씬 이지만, 감독이 대본을 수정하여 한남대교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씬으로 바뀌었다. 워낙 감독이 내 연기를 칭찬해 줬기에 그에 맞는 자살 연기로 보답해 주어야 했다. 워낙 저 예산 영화라 스턴트맨 없이 뛰어내려야 할 판국이다. 아직 한번도 번지점프도 안해봤기에 한남대교에서 뛰어내리려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다리밑에 119 보트도 보이고, 만일에 대비한 구조대들이 간간이 보여 마음이 놓였다.

 

7.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나도 모르게 기절한 모양이다. 산소 호흡기를 떼내고 누군가가 사다논 식혜캔을 따서 마셨다. 테이블에는 애심씨의 편지와 꽃다발이 있었다. 난 애심씨의 편지와 꽃다발을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리고 근처 편의점에 가서 하이네킨 맥주를 사서 마셨다.

TV를 보면서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간호사는 절대 마시지 말라며 주의를 주고, 그리고 주사도 줬다. 맥주를 마신탓인지 감각이 무뎌져 아프진 않았다.

오후 2시정도에 핸드폰으로 애심씨가 전화를 했다.

..................................”

, 애심씨... 식사는 하셨어요?”

.................................. ...... ..............”

, 그래요? 전 아직 못먹었어요.”

.......?.......................?”

별로 입맛이 없어서요. 저 용변이 급해서 화장실 좀 가야하는데. 이만 끊을게요.”

 

8.

퇴원을 하고 한달여간은 푹 쉬었다. 어차피 내가 맡았던 장애인 역할은 자살을 했기에 더 이상 나올수가 없었다.

차를 몰고 안면도에 바람이나 쐬러 갔다. 3년만에 바라보는 바닷가가 정말 편안했다. 파도치는 소리며, 독수리만한 갈매기의 울음소리, 소금끼가 가득 밴 바닷바람, 이 모든게 편안했다.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조개구이 집에서 맥주와 조개구이를 곁들어 먹었다. 한시간 정도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다보니 문득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으로 저장된 사람이 6명이었다. 아버지,어머니,,친구 광호,민훈, 그리고 애심. 애심이 번호를 지켜보다가 통화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

지금 제가 어디에 있는 줄 아세요?”

.....................?”

여기 안면도에요. 바다가 훤히 보이는데 너무 아름답네요.”

.............................................................................................................”

 

9.

창가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잠이 덜 깬 상태에서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

갑작스런 애심의 전화로 잠이 확 달아났다. 지금 머물고 있는 코스모스 모텔의 약도를 알려주려고 했으나, 차라리 내가 찾아 나서는게 편할 것 같았다.

거기 계세요. 금방 갈게요.”

청바지와 아이보리색 체크남방 하나 걸친채 차 시동을 걸었다.

태안역에는 홀로 그녀만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짙은 입술과 굽어진 허리, 아슬아슬한 치마 길이. 애심이가 틀림없었다.

어떻게 제가 여기있는줄 알았어요?”

.........................................................”

 

10.

현재 머물고 있는 코스모스 모텔에 차를 주차해 놓았다. 그리고 전망이 좋은 조개구이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가와서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애심이는 모든게 신기한 채 침을 흘리며 아이마냥 좋아했다.

.................................................................................................”

어제 와 봤는데 전망이 좋더라구요. 눈감고 잘 들어보세요. 파도소리 들리죠?”

.........................................................................”

시간있으면 자주 데리고 올게요.”

.................”

애심이와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눈건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술을 많이 마셔서 애심과 나는 점점 얼굴이 붉게 물들었고, 서로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혀가 꼬였다.

애심씨, 이제 들어갈까요?”

...................................................................”

 

11.

신발을 벗지도 않은채 애심과 나는 침대에 눕고 말았다. 살며시 뜬 눈 앞에는 애심이 살며시 잠을 자고 있었다. 하얀 브라우스에 브래지어가 비추고 아슬한 치마는 나의 이성을 흐려놨다. 너무나 크게 심장 뛰는 소리가 나는 듯 했다. 마침 애심씨가 나의 심장소리에 깬 듯이 살포시 눈을 떴다. 서로 눈을 보며 숨을 멈췄다. 난 멈출 수 없는 나의 입술을 애심의 입술에 포갰다. 마치 그녀의 입술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순수했다. 그렇게 애심이와 관계를 맺고 다음날 이른 아침에 서울로 올라갔다.

 

12.

난 애심이와 관계를 맺은 이후로 그녀에게 극도의 관심을 쏟아 부었다. 그녀의 화장이며, 치마의 길이며, 식사시간 조절이며 사소한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줬다. 그리고 밤에는 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는 함께 식사를 하고 초록 프로덕션에 함께 출근했다. 그렇게 그녀와 3개월을 함께 지냈다.

 

13.

...................................?”

애심이가 내 몸을 흔들었다. 눈을 떠보니 새벽4시에 시계는 움직이고 있었다.

.....................”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의 턱은 뒤틀렸고 침은 방바닥에 계속 흘리고 있었다. 머리는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게감을 느꼈다. 곧게 서 있을수 없었다. 팔은 꺽여 있었고, 허리며, 혓바닥이며, 입이며, 모든게 휘어질대로 휘어졌다.

........................?”

난 꿈을 꾸는 듯 했다. 아니 한편의 영화에서 내가 맡은 배역을 연기하는 듯 했다.

................................................................................................................”

애심씨는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

애심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내 머리를 자명종 시계로 강하게 후려쳤다. 이마엔 뜨거운 붉은 피가 흘러내렸고, 난 쓰러졌다.

 

14.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눈을 떠보니 어머니의 차가운 눈빛이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하고많은 직업중에 장애인 전문배역을 기어이 하더니 꼴 좋다!”

어머니는 가시같은 말을 쏟아부은채 병원문을 박차고 나가셨다.

문득 애심이가 생각났다. 테이블위에 핸드폰이 있었지만 굽고 휘어진 몸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가 45도로 굽어, 목이 고통스럽게 뻐근했다.

2미터 앞의 핸드폰을 10분동안 움직인 덕분에 간신히 손에 집어 넣었다.

..........................”

....................”

느낌이 좋지 않았다. 실수로 전화를 끊었다하기에 이상했다. 나는 다시 한번 애심에게 전화를 했다. 한참동안 신호를 보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자로 애심에게 글을 남겼다.

이 글보면 연락 주세요

문자를 보내고 지친몸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혹시 그 사이에 전화가 올지 몰라서 매너모드로 버튼을 누르고, 손에 핸드폰을 꼭 쥐고 잠을 잤다.

2시간여 잠을 잔 뒤,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열어봤다. 애심에게 문자가 왔다.

더 이상 연락하지 마세요. 죄송해요.’

씁쓸했다. 애심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버림을 받게 한 것이다. 그것도 장애인 애심에게.

애심도 장애인 남자친구는 싫은 것이었다. 서로 마주보며 침을 흘리며 온갖 힘을다해, 말 한마디 한마디 하는 것이 지겨웠던 것이었다. 핸드폰 액정엔 나의 눈물과 침이 범벅이 되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어도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15.

지금은 한남대교에 서있다. 12월의 차가운 날씨에 바람도 거셌다. 지난 4월에 이곳에서 영화를 찍던 생각이 났다. 그땐 장애인이 아니라 정상인이었고, 당당한 배우였다. 하지만 장애인이 된 지금, 마치 리얼한 장애인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이 장면만 마치면 과거로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남대교를 내려다보니 약간 설얼은 듯한 얼음 조각이 보이기도 하다. 다리 난간을 잡으니 차가운 기운이 온몸에 퍼졌다. 나의 오른쪽 다리를 한남대교 다리에 걸치자 그곳을 지나가는 승용차에서 사람들이 창밖으로 고개를 뺀 채 소리를 질렀다.

난 이게 연기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이 장면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긴 한숨을 쉬고 뛰어 내릴 준비를 했다. 일단 구두를 벗어주었다. 애심이가 이 구두를 보고 가슴이 아프길 간절히 바랬다.

하나,,!’

풍덩소리와 함께 나의 연기 인생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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