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2일 화요일

작가 블랙판다 - 단편소설 '세상의 저끝'

 

작가 블랙판다 - 단편소설집

스물셋, 예술에 꽂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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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저끝

 

 

 

1.

역시 상혁이는 연기를 잘한다니까.”

고 감독님은 내 연기를 모니터링을 하면서, 나의 기분을 맞추려고 하는지, 아니면 정말 나의 연기가 일품이었는지 몰라도 연신, 나를 칭찬해 주었다.

고 감독님 옆에서서, 나의 연기를 지켜보았다. 머리는 45도로 젖혀있고, 눈과 왼쪽 입꼬리는 붙어 자꾸 식용개처럼 질질 흘렸다. 몸을 주체하지 못해 진동을 느끼듯이 좌우로 흔들었다. 내가 봐도 정말 중증 뇌성마비였다.

 

2.

초록 프로덕션에 내 품삯을 줬다. 워낙 조그만 회사라 자체 봉투도 없어 월급을 교회 감사헌금 봉투에 넣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7만원’. 일주일 동안 열연한 결과가 7만원이었다. 하지만 한달 전보다 13천원을 더 주었기에 그리 불만은 없었다. 나는 불만이 없었지만 부모님은 불만이 많으셨다. 당장 때려치우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내 마음도 살짝 흔들렸지만, 역시 그 일은 내 천직이라 생각했다.

부모님이 일본여행을 하시다 사온 사쿠라 바디샴프로 샤워를 했다. 물 온도는 내 체온과 비슷해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TV를 켜고 하이네킨 맥주를 마셨다. 맥주광인 나는 하이트 맥주나 오비맥주 보다는, 내겐 수입맥주가 내 입맛에 맞았다. 한 모금 삼킬 때, 목젖에 느끼는 감촉이 국산 맥주에선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캔 맥주 6개를 까서 마시니 조금씩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3개를 더 까서 마시니 내 자신이 취했구나 할 정도로 몸을 못가누었다.

두시간 정도 잠깐 잠을 잔 것 같다. 어머니가 내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난 눈을 뜨자 어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방에 들어갔다. 나 또한 엄마가 안방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 후 다시 잠을 잤다.

 

3.

어제의 어머니의 행동은 벌써 2년이나 계속 됐다. 내 행동에 문제가 생긴 것 또한 2년이나 되었다.

2년 전부터 나의 몸엔 이상한 유전자가 꿈틀거렸다. 술에 취할때나 잠을 잘 때, 명상에 잠길 때 난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난 무의식중이라 잘 알수 없었지만, 친구가 핸드폰으로 찍어진 동영상을 본 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아침에 어머니와 식사를 하다 어머니가 내게 뺨을 때린 경유를 물었다.

어제는 말야, 왼손과 오른손을 꽉 진채 니얼굴을 사정없이 치는거야. 마치 자폐아들이 하는 자해행위를...... 난 그냥 10분간 쳐다보았지... 하지만 점점 도가 지나쳐 그만 끝내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싶어 니 뺨을 세게 후려친거야.....

그런데 엄마가 볼땐 니가 정말 뇌성마비가 된 듯한 착각을 하게 될 정도로 똑같았어. 계속 침은 질질 흘리지, 머리는 기울어져 있고, 얼굴도 일그러져 있고.... 상혁아, 그만 그 일좀 그만 두렴.“

 

4.

다음날 오전 10시에 일어난 뒤, 오후 4시에 있는 교통사고로 자살하는 뇌성마비 씬을 준비했다. 그냥 대본을 훑어보고 하이네킨 맥주 한캔을 땄다. 역시 하이네킨 맥주는 목 젖을 간지럽게 감촉을 줬다. 초록 프로덕션에 도착한 뒤, 소파에 앉아 스탭들을 기다렸다.

......... ........ ...........................”

초록 프로덕션 사장 딸인 애심씨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중증 뇌성마비이다). ‘안녕하세요를 무려 29초 동안 하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연기공부를 하고 있었다. 머리가 굽어진 각도나, 그 어눌한 말투, 1분에 질질 흘리는 침의 양, 팔의 굽어진 모습들. 난 그녀에게 - (그녀는 나의 살아있는 연기 스승이었다) - 고마움으로 호의적인 태도로 대해주자 그녀는 나에게 메머드급 관심을 주었다.

 

5.

아마도 그녀가 날 좋아한 뒤로 화장을 하고 다녔던걸로 기억난다. 처음 그녀를 봤던건 2년전 여름이었다. 그녀는 사장 둘째딸로 뇌성마비 장애 2급으로, 타이핑 같은 작업을 했다. 비록 몸이나 말하는건 불편하지만 어느정도의 일거리를 주면 그일이 끝날때까지 일을 마치는 의지와 집념이 강한 여성이었다. 그리고 어느 한 뇌성마비 남성이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했지만, 단호히 거절한 콧대높은 아가씨였다.

그녀의 화장이 점점 진해지기 시작하면서 난 그녀가 날 좋아하는 감정의 깊이처럼, 그녀의 화장 농도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요새 화장 농도가 급격히 진해졌다. 그리고 입지도 않던 치마를 입고 왔다. 뼈밖에 남지 않은 약간 흉직한 다리지만 그녀는 치마를 입으면 나를 유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녀가 내게 줬던 음악 CD는 아마 백여장 가까이 될 정도이다. 언제나 음악을 듣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음악적 수준이 정말 뛰어났다. 그녀는 나에게 항상 에반스 Jazz 음악이 정말 좋다고 같이 음악회에 가자고 했으나 약속 핑계로 번번이 그녀에게 좌절감을 심어줬다. 하지만 사장 딸이라 두둑한 용돈 덕분인지 그녀가 내게 준 선물들을 돈으로 환산하면 거의 소리가 날 정도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가식적인 관심을 준다던가, 마음에도 없는 아름답습니다라는 말은 추호도 하지 않았는데, 그런 모습이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나보다.

 

6.

지금은 한남대교에 서있다. 4월의 포근한 날씨지만, 강한 바람때문인지 겨울과 다를 바 없었다. 사실 원래는 한남대교를 걷다 마주오는 차에 몸을날려 자살하는 씬 이지만, 감독이 대본을 수정하여 한남대교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씬으로 바뀌었다. 워낙 감독이 내 연기를 칭찬해 줬기에 그에 맞는 자살 연기로 보답해 주어야 했다. 워낙 저 예산 영화라 스턴트맨 없이 뛰어내려야 할 판국이다. 아직 한번도 번지점프도 안해봤기에 한남대교에서 뛰어내리려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다리밑에 119 보트도 보이고, 만일에 대비한 구조대들이 간간이 보여 마음이 놓였다.

 

7.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나도 모르게 기절한 모양이다. 산소 호흡기를 떼내고 누군가가 사다논 식혜캔을 따서 마셨다. 테이블에는 애심씨의 편지와 꽃다발이 있었다. 난 애심씨의 편지와 꽃다발을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리고 근처 편의점에 가서 하이네킨 맥주를 사서 마셨다.

TV를 보면서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간호사는 절대 마시지 말라며 주의를 주고, 그리고 주사도 줬다. 맥주를 마신탓인지 감각이 무뎌져 아프진 않았다.

오후 2시정도에 핸드폰으로 애심씨가 전화를 했다.

..................................”

, 애심씨... 식사는 하셨어요?”

.................................. ...... ..............”

, 그래요? 전 아직 못먹었어요.”

.......?.......................?”

별로 입맛이 없어서요. 저 용변이 급해서 화장실 좀 가야하는데. 이만 끊을게요.”

 

8.

퇴원을 하고 한달여간은 푹 쉬었다. 어차피 내가 맡았던 장애인 역할은 자살을 했기에 더 이상 나올수가 없었다.

차를 몰고 안면도에 바람이나 쐬러 갔다. 3년만에 바라보는 바닷가가 정말 편안했다. 파도치는 소리며, 독수리만한 갈매기의 울음소리, 소금끼가 가득 밴 바닷바람, 이 모든게 편안했다.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조개구이 집에서 맥주와 조개구이를 곁들어 먹었다. 한시간 정도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다보니 문득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으로 저장된 사람이 6명이었다. 아버지,어머니,,친구 광호,민훈, 그리고 애심. 애심이 번호를 지켜보다가 통화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

지금 제가 어디에 있는 줄 아세요?”

.....................?”

여기 안면도에요. 바다가 훤히 보이는데 너무 아름답네요.”

.............................................................................................................”

 

9.

창가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잠이 덜 깬 상태에서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

갑작스런 애심의 전화로 잠이 확 달아났다. 지금 머물고 있는 코스모스 모텔의 약도를 알려주려고 했으나, 차라리 내가 찾아 나서는게 편할 것 같았다.

거기 계세요. 금방 갈게요.”

청바지와 아이보리색 체크남방 하나 걸친채 차 시동을 걸었다.

태안역에는 홀로 그녀만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짙은 입술과 굽어진 허리, 아슬아슬한 치마 길이. 애심이가 틀림없었다.

어떻게 제가 여기있는줄 알았어요?”

.........................................................”

 

10.

현재 머물고 있는 코스모스 모텔에 차를 주차해 놓았다. 그리고 전망이 좋은 조개구이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가와서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애심이는 모든게 신기한 채 침을 흘리며 아이마냥 좋아했다.

.................................................................................................”

어제 와 봤는데 전망이 좋더라구요. 눈감고 잘 들어보세요. 파도소리 들리죠?”

.........................................................................”

시간있으면 자주 데리고 올게요.”

.................”

애심이와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눈건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술을 많이 마셔서 애심과 나는 점점 얼굴이 붉게 물들었고, 서로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혀가 꼬였다.

애심씨, 이제 들어갈까요?”

...................................................................”

 

11.

신발을 벗지도 않은채 애심과 나는 침대에 눕고 말았다. 살며시 뜬 눈 앞에는 애심이 살며시 잠을 자고 있었다. 하얀 브라우스에 브래지어가 비추고 아슬한 치마는 나의 이성을 흐려놨다. 너무나 크게 심장 뛰는 소리가 나는 듯 했다. 마침 애심씨가 나의 심장소리에 깬 듯이 살포시 눈을 떴다. 서로 눈을 보며 숨을 멈췄다. 난 멈출 수 없는 나의 입술을 애심의 입술에 포갰다. 마치 그녀의 입술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순수했다. 그렇게 애심이와 관계를 맺고 다음날 이른 아침에 서울로 올라갔다.

 

12.

난 애심이와 관계를 맺은 이후로 그녀에게 극도의 관심을 쏟아 부었다. 그녀의 화장이며, 치마의 길이며, 식사시간 조절이며 사소한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줬다. 그리고 밤에는 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는 함께 식사를 하고 초록 프로덕션에 함께 출근했다. 그렇게 그녀와 3개월을 함께 지냈다.

 

13.

...................................?”

애심이가 내 몸을 흔들었다. 눈을 떠보니 새벽4시에 시계는 움직이고 있었다.

.....................”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의 턱은 뒤틀렸고 침은 방바닥에 계속 흘리고 있었다. 머리는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게감을 느꼈다. 곧게 서 있을수 없었다. 팔은 꺽여 있었고, 허리며, 혓바닥이며, 입이며, 모든게 휘어질대로 휘어졌다.

........................?”

난 꿈을 꾸는 듯 했다. 아니 한편의 영화에서 내가 맡은 배역을 연기하는 듯 했다.

................................................................................................................”

애심씨는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

애심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내 머리를 자명종 시계로 강하게 후려쳤다. 이마엔 뜨거운 붉은 피가 흘러내렸고, 난 쓰러졌다.

 

14.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눈을 떠보니 어머니의 차가운 눈빛이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하고많은 직업중에 장애인 전문배역을 기어이 하더니 꼴 좋다!”

어머니는 가시같은 말을 쏟아부은채 병원문을 박차고 나가셨다.

문득 애심이가 생각났다. 테이블위에 핸드폰이 있었지만 굽고 휘어진 몸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가 45도로 굽어, 목이 고통스럽게 뻐근했다.

2미터 앞의 핸드폰을 10분동안 움직인 덕분에 간신히 손에 집어 넣었다.

..........................”

....................”

느낌이 좋지 않았다. 실수로 전화를 끊었다하기에 이상했다. 나는 다시 한번 애심에게 전화를 했다. 한참동안 신호를 보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자로 애심에게 글을 남겼다.

이 글보면 연락 주세요

문자를 보내고 지친몸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혹시 그 사이에 전화가 올지 몰라서 매너모드로 버튼을 누르고, 손에 핸드폰을 꼭 쥐고 잠을 잤다.

2시간여 잠을 잔 뒤,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열어봤다. 애심에게 문자가 왔다.

더 이상 연락하지 마세요. 죄송해요.’

씁쓸했다. 애심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버림을 받게 한 것이다. 그것도 장애인 애심에게.

애심도 장애인 남자친구는 싫은 것이었다. 서로 마주보며 침을 흘리며 온갖 힘을다해, 말 한마디 한마디 하는 것이 지겨웠던 것이었다. 핸드폰 액정엔 나의 눈물과 침이 범벅이 되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어도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15.

지금은 한남대교에 서있다. 12월의 차가운 날씨에 바람도 거셌다. 지난 4월에 이곳에서 영화를 찍던 생각이 났다. 그땐 장애인이 아니라 정상인이었고, 당당한 배우였다. 하지만 장애인이 된 지금, 마치 리얼한 장애인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이 장면만 마치면 과거로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남대교를 내려다보니 약간 설얼은 듯한 얼음 조각이 보이기도 하다. 다리 난간을 잡으니 차가운 기운이 온몸에 퍼졌다. 나의 오른쪽 다리를 한남대교 다리에 걸치자 그곳을 지나가는 승용차에서 사람들이 창밖으로 고개를 뺀 채 소리를 질렀다.

난 이게 연기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이 장면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긴 한숨을 쉬고 뛰어 내릴 준비를 했다. 일단 구두를 벗어주었다. 애심이가 이 구두를 보고 가슴이 아프길 간절히 바랬다.

하나,,!’

풍덩소리와 함께 나의 연기 인생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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